考槃餘事(고반여사)  _  2010.9.14
이 책은 을유문고 89 번 책으로, 1982 년에 제4판이 발행되었고 가격은 1,000 원이라 적혀있다. 기억으로는 1984 년에 구입한 것 같다.

이 책이 어떤 책이냐는 책의 앞부분 해설에 잘 설명이 되어 있으니 그 일부를 간추려 소개한다.

책은 중국 명나라 당시 ‘도륭’이라는 문인이 지었고 考槃餘事(고반여사)라는 제목은 詩經(시경)의 문구인 ‘考槃在澗(고반재간) 碩人之寬(석인지관)’에서 따왔다고 되어있다.

考(고)는 두드린다는 말이요 槃(반)은 악기이니 考槃在澗(고반재간)이란 말은 악기를 타며 골짜기에 살고 있다는 의미이고 석인재관은 대인의 胸懷(흉회)가 넓고 크다는 말이다. 물론 고반여사에서 ‘餘事(여사)’는 여가 시간에 하는 취미를 말한다.

山家(산가)에 사는 墨客(묵객), 즉 책을 읽는 문인들의 생활과 취미에 대한 책인 것이다.

내용은 書(서)와 帖(첩), 畵(화), 紙(지), 墨(묵), 筆(필), 硯(연), 香(향), 茶(다), 琴(금), 盆玩(분완), 魚鶴(어학), 山齋(산재), 起居器服(기거기복), 문방기구, 遊具(유구)의 16 가지 항목에 대해 이모저모 낱낱이 설명하고, 收藏(수장)과 鑑賞(감상)의 방법까지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1600 년대 초반에 나왔으니 명나라 문인들의 취미생활 따라서 조선시대 우리 문인계급들의 취미생활, 즉 그들의 風流(풍류)생활 나아가서 은거한 뒤에 산속에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어떤 방식으로 추구했었는지를 능히 엿볼 수 있게 한다.

오늘날 21세기 시대가 많이 다르고 문인계급이 아니라 원하는 이는 누구나 풍류의 삶, 멋스런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또 돈이 있고 약간의 지식이 있는 자는 전원주택을 짓고 살거나 또는 귀농하여 나름의 淸雅(청아)한 삶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다.

오늘날에는 이에 대해 다양한 서적과 잡지들이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책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 ‘고반여사’란 책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가장 럭셔리한 취미생활에 대한 가이드북인 것이다.

수묵화를 취미로 하는 나는 당연히 종이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고반여사 중에 종이에 관한 부분을 읽곤 한다.

흥미로운 대목을 약간 소개하면 이렇다.

종이에 대한 글에서 ‘高麗紙(고려지)는 繭綿(견면)으로 만들었다. 빛은 희고 비단 같으며, 단단하고 질긴 것 역시 비단과 같다. 여기에 글씨를 쓰면 먹빛이 아름답다. 이것은 중국에서 나지 않아서 또한 진기한 물건이기도 하다’고 되어있다.

조선에서 생산되던 종이, 韓紙(한지)는 중국에서도 애호되었던 모양이다. 지금 우리나라 한지는 전주한지와 원주한지가 유명하다. 한지에 수묵으로 그릴 때면 가끔 나는 고반여사의 이 대목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또 그림에 관한 대목에서 이런 말도 있다.

‘그림을 걸어둠에 있어 경치를 마주보는 자리에는 그림을 걸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림이 실제의 경치보다 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나는 빙긋 웃음을 짓는다.

그림과 실제 경치는 다른 법이고 다른 것을 표현하고 있는데 저자는 그림의 묘사가 아무리 뛰어나도 실경보다는 못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저자의 그림에 대한 안목이 그다지 높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琴(금)에 관한 대목도 재미가 있다.

저자는 ‘琴(금)은 書室(서실)중의 雅樂(아악)으로서 하나 정도는 당연히 벽에 걸어두어야 할 것이다. 금을 탈 줄 알고 모르고는 상관이 없다. 금은 마땅히 있어야 하는 물건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 문인들의 琴(금)에 대한 생각을 잘 전해주는 대목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은 이후, 어쩌다가 다른 이의 서재에 들르게 되면 벽에 거문고가 혹시 있지 않은지 살펴보게 되었다. 거문고는 연주할 줄 몰라도 좋은 것이, 그저 줄을 손가락으로 한 번 튕겨만 보아도 그 깊은 음색은 단숨에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반여사에 실린 글들이 모든 것의 표준이 될 수는 없지만, 내가 여전히 재미있어 하는 것은 당대 사람들의 취미생활에 관한 다양한 것들과 생각들을 엿보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최근 들어 향을 즐기는 사람도 제법 많아졌다. 그렇다면 이 책의 글들도 재미가 있을 것이다.

先人(선인)들의 취미생활을 엿볼 수 있는 이 책, 考槃餘事(고반여사)를 나의 책꽂이 코너에 첫 번째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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