芥子園畵傳(개자원화전)  _  2010.11.23
‘돌은 산의 뼈요 물은 돌의 뼈다. 물의 성질은 지극히 부드러운데 돌의 뼈라는 말이 可當(가당)한가를 묻는 자도 있지만, 이에 나는 이렇게 답하고자 한다. 물은 산을 밀어젖히고 돌을 뚫어 황하의 신인 巨靈(거령)을 흔들어놓는 힘이 있으니 물보다 강한 것은 없다고.’

‘물은 작게는 빠른 개울이 되어 날기도 하고 거품이 되어 뿌리기도 하며 크게는 大河(대하)가 되어 멀리 적시고 바다가 되어 만물을 기르기도 한다. 물방울이라 해서 어찌 천지의 피와 뼛속이 아니겠는가.’

‘피는 뼈를 배태하는 당사자요 骨髓(골수)는 뼈에 영양을 공급하는 자이다. 만약 뼈에 골수가 없다면 마른 뼈라 할 것이다. 마른 뼈는 흙덩이와 같으니 이미 뼈가 아닌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산이 뼈일 수 있는 것은 실로 물의 德(덕)이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글은 마치 철학의 談論(담론)과도 흡사하다.

그러나 이 글은 사실 山水畵(산수화)에 있어 물을 그리는 법, 즉 畵法(화법)에 관한 글이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풍경화에서 물을 그리는 법을 얘기하면서 가령 수채화 기법에 관한 책이라면 어떻게 관찰하고 붓질은 어떻게 하고 색은 어떤 색을 쓰는지 그 묘사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하지 않고, ‘물은 돌의 뼈’라는 철학 비슷한 얘기를 늘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앞에서 인용한 문장은 산수화에서 물을 그리는 법을 논하는 화법서에 실려 있다. 화법에 관한 책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芥子園畵傳(개자원화전)이라는 책이다.

물을 그리는데 기법은 논하지 않고 ‘돌은 산의 뼈요, 물은 돌의 뼈’라는 생각을 가져야만 물을 잘 그릴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이 정도 자락을 깔았으니 이제 하고자 하는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山水畵(산수화)는 서양의 풍경화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산수화나 풍경화나 모두 산과 물이라는 자연의 대상을 그리는 같은 그림인 줄 알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수채화는 수채 물감을 써서 그리고 유화는 유화 물감을 쓰고 산수화는 먹을 써서 그리는 정도의 차이인 줄 안다.

이는 오늘날의 우리 의식이 거의 西歐化(서구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수화의 정신은 자연에 나아가 눈앞에 보이는 산이나 물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내려는 노력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산과 물의 정신을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돌은 산의 뼈요, 물은 돌의 뼈라는 이상한 철학 담론 같은 얘기를 그림 그리는 기법에 관한 책, 화법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내친 김에 구름을 그리는 법에 관한 芥子園畵傳(개자원화전)의 설명을 들어보자.

‘구름은 천지의 큰 장식이다. 구름은 산천에 錦繡(금수), 즉 비단옷을 입히며 속력이 빠른 것은 달리는 말과 같아서 돌에라도 부딪치면 소리가 날 것 같다.’

‘무릇 옛사람들이 구름을 그린 것은 보면 두 가지 비결이 있다. 하나는 산수화에서 千巖萬壑(천암만학), 무수한 봉우리들이 겹쳐 있는 번잡한 곳을 구름으로 한가롭게 만드는 법이다.’

‘푸른 봉우리가 하늘에 치솟았는데 갑자기 흰 구름이 가로 휘날리며 층층으로 산을 뒤덮는 것이나 왼쪽에서 구름이 개이면 푸른 산마루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이는 문인들의 이른바 忙裏偸閑(망리투한), 바쁜 중에 한가로움을 훔쳐내는 법과 같다 하겠다.’

‘또 한 가지의 방법은 그림에 봉우리가 하나밖에 없어 구도가 너무 한가한 경우 구름을 가지고 화면을 바쁘게 하는 법이다. 마치 산과 물이 다한 곳,  코앞에서 구름이 일어나고 갑자기 바다에 포개진 물결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내가 산수를 그리는 법에 있어 구름을 마지막으로 돌린 것은 옛사람들이 구름은 산수의 마감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까닭이다. 그래서 산을 雲山(운산)이라 하는 것이고 물을 雲水(운수)라고 한다.’

책에서 저자는 구름 그리는 법을 산수화 기법의 마지막에 설명하면서 이런 이유를 들고 있다.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이 ‘개자원화전’이란 책과 접했었다. 당시 내가 관심 있었던 것은 그림 그리는 기법, 붓을 놀리는 기법과 먹을 쓰는 기법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앞서와 같이 물을 그리는 방법이나 구름 그리는 방법 등에서 물은 돌의 뼈라는 등 구름은 천지의 큰 장식이라는 이상한 소리,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그러니까 봉창 두드리는 소리와 접했다는 느낌이었다. 당시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아니 그림 그리는 법에 관한 책이라 하더니 이건 완전 다른 물건이잖아 하면서 덮어버렸다.

그 후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연필 데생이나 드로잉, 수채화 등을 즐겨왔다. 그러다가 재작년 8월 어느 날 갑자기 느껴지는 바가 있어 수묵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실은 그 이전에 개자원화전의 이 부분을 다시 읽었던 것이 이유였다.

산수화란 산수를 그리되 그냥 산수가 아니라 산수의 精神(정신)과 靈魂(영혼)을 그려내는 일이라는 점을 느꼈던 것이다. 이를 수묵화에서는 意境(의경)이라 한다.

그렇다면 意境(의경) 역시 산수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된 理念(이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말해 觀念(관념)적 풍경화를 그린다는 것이 오늘날에 와서 의미가 있을까 하는 懷疑(회의)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 역시 서구인들의 근대사회의식 특히 진보적 이념에 찌들고 멍든 서구정신의 부산물이고 찌꺼기임을 알게 되었다.

‘물은 돌의 뼈’라는 생각이 마치 고정 관념으로 낙착이 될 것 같지만 그림에 있어 그것은 화가의 영혼과 표현 능력을 통해 부단히 새롭게 창조되는 것인 이상 그를 두고 고정관념이니 이념이니 떠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자원화전’이란 이 화법책은 국내에 번역되었으나 시중에 절판된 지 오래이다.

그러나 나는 독자가 이 책을 한 번 읽게 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수묵화를 그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책을 보면서 우리의 옛 사람들이 그림을 그릴 적에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었는지를 엿보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一讀(일독)을 권하는 것이다.

그림도 글처럼 아는 것이 있어야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겨우 들은 얘기라곤 '여백의 미' 정도가 전부인 정도로선 김홍도나 정선 등 우리 대가들의 그림을 포함해서 동아시아 세 나라의 그림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다. 그들이 그림을 연구하고 배움에 있어 기본 텍스트였던 이 책을 대하다 보면 그들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애썼던 가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니 그렇다.

그림을 떠나 ‘돌은 산의 뼈요, 물은 돌의 뼈’라는 말이 무척이나 우리들의 틀에 박힌 사고에 신선한 자극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니,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로서 이 책을 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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