陰陽五行說(음양오행설)을 최초로 종합한 이는 중국 춘추전국 시대 사람인 鄒衍(추연)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사람의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지난 토요일의 글 ‘언어 속의 화석’에서 hyperborei, 북녘 너머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했는데 추연의 주장과 유사한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 경제사상에 관한 주요한 저술로서 鹽鐵論(염철론)이란 책이 있는데 그 속에 추연의 주장을 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제목은 論鄒(논추)인데 그 대목을 일부 옮겨본다.
“중국은 천하의 1/81 이다. 이를 赤縣神州(적현신주)라 이름하며 이를 다시 나누면 아홉이 된다. 내와 골짜기가 막히고 끊어져 육지가 통하지 않으면 하나의 州(주)가 되며 큰 바다가 그 밖을 감싸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八紘(팔굉)이며 천하가 여기에서 끝난다.”
중국은 고래로 그들의 땅을 아홉 개의 州(주)로 나누었으니 이른바 九州(구주)사상이다. 이는 고대 井田法(정전법)에서 토지를 9 등분해서 나누어주던 사고방식과 연관이 있다. (앞의 글 641 회 ‘중국 공산당 90 년 주년에’란 글에서 정전법에 대해 잠깐 설명했다.)
그런데 기원전 300 년경의 사람이었던 추연은 중국이 천하의 전부가 아니라 겨우 1/81(1/9X9)이며 또 중국이 세계의 중앙에 있지도 않다는 주장을 펼쳤던 것이다.
추연 주장대로라면 천하의 가운데에 있는 나라라고 해서 그들이 붙인 中國(중국)이란 명칭은 가당치 않고 세계의 귀퉁이에 있는 나라 즉 邊國(변국)이 된다.
이로서 추연이 활동했던 춘추전국 시대에 이미 중국인들은 저 북쪽에 실로 측량할 수 없이 커다란 땅이 있다는 것을 나름 감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중국 북쪽에는 고비 사막이 있고 그 너머에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엄청 넓은 불모의 땅이 존재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 역시 북쪽 땅, 즉 북극 지방에서 여러 손을 거치면서 毛皮(모피)가 전해오고 다시 다른 물품들을 넘기던 교역상의 말을 통해 알게 되었을 것이라 본다. 이로서 앞의 글 hyperborei 에 관한 글에서 소개했던 것과 동일한 맥락이 있기에 오늘 소개했다.
그런데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음양과 오행을 종합한 鄒衍(추연)이란 사람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춘추 시대 말기에 魯(노)나라와 齊(제)나라 사이에 아주 작은 도시국가가 있었으니 그 나라 이름은 鄒(추)였다. 이 작은 나라는 인근의 강국, 우리로서는 서해 바다 건너편의 산동 반도에 있던 강국 齊(제)나라에게 결국 병합이 되었다.
鄒衍(추연)은 따라서 원래 소국 鄒(추)나라의 귀족이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서두에서 잠깐 얘기했듯이 음양사상과 오행사상은 원래 별도로 성립되었는데, 추연은 이를 종합해서 새로운 학설을 폈던 것이다.
중국 사상 내지는 동아시아 사상에 있어 가장 굵은 줄기를 말하라면 유교와 도교, 불교, 그리고 음양오행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앞서의 ‘유불선’ 三敎(삼교)에 대해서는 기본 경전을 비롯하여 실로 무수한 서적과 기록들이 전해져 오지만 이상하게도 음양오행에 대해서는 정작 책이 별로 없다.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라, 음양오행에 관한 것들이 일종의 秘術(비술)로서 여겨져 온 탓도 있지만, 주류로서 자리를 잡은 儒敎(유교)가 음양오행의 주장을 부단히 異端(이단)으로 눌러왔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오늘날에도 우리 사상 풍토에서 음양오행을 얘기하면 여전히 약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있다.)
동시에 유교나 도교 모두 음양오행을 자신의 내부로 흡수시켜왔기에 음양오행은 하나의 주된 흐름으로서 자리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
추연에 대한 기록 역시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사마천의 史記(사기)중에 맹자와 순자를 얘기한 孟荀列傳(맹순열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추연은 제나라에서 존중을 받았다. 양나라로 가자 혜왕이 교외까지 영접을 나오니 주객이 대등한 예를 갖추었다. 조나라에 가자 평원군이 경건한 태도로 그의 곁에서 걸었고 자리의 먼지를 자신의 옷깃으로 털었다. 연나라로 갔더니 왕이 직접 비를 들고 길을 쓸었으며 다른 제자들과 동석하여 배우기를 청했다.’
이를 보면 당시 추연의 명망이 대단히 높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공자나 맹자, 묵자나 노자 등등 어떤 학자들도 이토록 높은 대우를 받지 않았다. 이것은 오히려 추연과 그 무리들이 나중에 제자백가로부터 집중적인 견제를 받는 원인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추연에 관한 얘기는 史記(사기)의 封禪書(봉선서)나 呂氏春秋(여씨춘추)등에도 일부 보인다.
봉선서에 적힌 말을 일부 옮기면 다음과 같다.
“제나라 위왕과 선왕 시대에 추연 일파들은 五德終始(오덕종시)등의 책으로 옛 제왕들의 왕조 변경이 오행의 生剋(생극)이 서로 배합되고 五德(오덕)의 서로 이기는 관계를 통해 설명하였다. 秦(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제나라 사람이 이를 上奏(상주)하였다. 始皇(시황)이 즉시 채용하고는 秦(진)은 水德(수덕)을 명받았으므로 하늘의 뜻과 운이 이와 같다고 여겼다.”
무술 배우 이연걸이 주연으로 나온 ‘영웅’이란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를 보면 진시황의 관리와 군인들이 일제히 검은 색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오행에서 水(수)는 색으로 검정이라, 진시황은 일제히 검정색으로 복장을 통일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은 뻥이다, 영화 장면에서 이연걸이 진시황과 독대하는 장면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전의 일로서 그때까지도 해도 진나라 관리들은 검정색을 입지 않았다, 검정 색 복장은 통일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뭐 상관 있으랴!)
추연의 故國(고국) 추나라는 공자가 태어난 魯(노)나라와 바로 인근에 붙어있다. 추연 역시 젊어서는 공자의 영향을 받아 儒學(유학)을 배웠으나 나중에 ‘變化(변화)와 始終(시종)의 이론’을 배우게 되었다고 기록에 전한다.
그리고 방선도의 문도가 되었다. 방선도란 方術(방술)과 仙術(선술)을 말한다.
방선도는 중국 산동일대가 근원지로서 따지면 ‘환발해 문명권’이라 할 수 있고, 전통의 중국 문화와는 궤를 달리하는 해양 문화, 오히려 우리와는 더 가까운 문화권에 속한다.
三神山(삼신산)의 사상이나 신선에 관한 모든 것들이 원래 이 지역에서 나왔으니 이는 고대 북방 아시아의 巫俗(무속) 전통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리하여 훗날 현실세계를 강조하는 중국 내륙 전통의 학문인 유교로부터 많은 배격을 받았지만, 나중에 가서 老莊(노장) 사상에 근거를 둔 道敎(도교) 방면으로 흡수가 되어버렸다.
추연이 종합한 음양오행은 이처럼 유교에도 흡수되었고 도교에 들어가 거의 본체가 되어 버렸으며 이후로도 끊임없이 다양한 학자들 사이에서 공식적이진 않지만 부단히 이어져온 동아시아 사상의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공자가 젊은 시절 엄청난 영향을 받았던 나라 역시 제나라였으며, 추연의 주 활동무대였던 제나라는 본질적으로 우리와 연관이 깊은 東夷(동이)족의 세계였다.
제나라의 사상은 훗날 중국의 사상 세계가 진부해지고 흔들릴 때마다 언제나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하는 근원이 되었으니 이를 두고 사람들은 ‘제나라 학문’ 즉 齊學(제학)이라 했다.
이 ‘제학’에 대해서는 언젠가 좀 더 깊게 얘기하는 글을 마련하고자 한다. 사실 많은 얘기를 해드리고 싶지만, 이런 글을 골치아파하는 독자들도 많을 것 같아 스스로 자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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